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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물: 물과 공공예술내가 본 것들 2024. 2. 2. 21:43
지구 표면의 약 71퍼센트는 물로 덮여 있다는 사실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물은 생명의 중요한 원천이며, 문명과 도시가 발전하는 데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이 물일 것이다. 서울은 한강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런던은 템즈강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였다. 중국 문명은 황하를 중심으로,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을 따라 발전했다. 물은 수 많은 이야기들의 발생지 이기도 하다.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살았고, 사람이 있는 곳에 이야기가 피어났다.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2003년 여름에 시작되었던 청계천 복원을 기억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청계천은 청계고가도로로 덮여 있었다. 고가도로를 지을 당시 물길 위에 뚜껑을 덮는 형태로 만들어졌고 지어진 지 30년이 넘어 노후화된 청계고가는, 오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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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와 도시 공간: 인간에 대한 이해내가 본 것들 2024. 1. 7. 22:38
12월의 영국은 정말 별로다. 크리스마스라는 큰 명절이 있어 거리가 화려해지기는 하지만 그것도 10년 이상 보다보면 지친다. 항상 똑같은 마케팅, 똑같은 거리장식, 똑같은 장소들. 추석에 대해서는 그립고 따스한 느낌이 드는 걸 보면 이것은 타지에서 겉도는 외국인의 불평일 뿐일까? 여러 이유를 차지하고 사실 가장 크고 직접적인 문제는 날씨다. 영하로 내려가지는 않으나 항상 비가 오고 질척하게 음산한 날씨는 12월에 정점을 찍는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퍼지는 탈출에의 욕구를 거부하기 어려워지는 때가 12월이다. 그래서 이번 12월에는 잠시 모로코를 다녀왔다. 햇볕이 내리쬐는 곳으로 피신해서 일광욕이나 잔뜩 하고오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고,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슬람 국가의 예술, 특히 공공미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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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펜타인 파빌리온: 건축과 예술 사이내가 본 것들 2023. 11. 27. 00:38
런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축물은 무엇이 있을까, 렌조 피아노(Renzo Piano)의 샤드(The Shard),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거킨(Gherkin), 라파엘 비놀리(Rafael Vinoly)의 워키토키(Walkie Talkie) 등, 이름이 곧 브랜드인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 템즈강변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이들 건물들은 런던의 스카이라인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며, 오래도록, 아마도 지금 이 건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같은 사람들보다 훨씬 오랜 시간동안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그런데, 건축의 세계는 과연 견고하고 영원하기만 한 것일까? 한없이 가볍고 잠시동안 존재하는 것들의 자리는 없는 것일까? 오늘 이야기하려는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앞서 언급한 일반적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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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ze 2023, 공공프로그램을 말한다.내가 본 것들 2023. 10. 31. 05:09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런던 프리즈 위크(Frieze week). 2003년 런던에서 영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프리즈 아트페어는 올해도 역시 6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다녀가며 여전한 영향력과 티켓파워를 증명해냈다. 흔히들 프리즈 하면 메인 이벤트인 '프리즈 런던' 과 '프리즈 마스터즈'를 떠올리지만, 오늘은 프리즈가 운영하는 공공 프로그램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비록 상업적인 행사인 아트페어이지만, 국제 미술계 인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담론 형성을 위해 프리즈는 중요한 퍼블릭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 대표적 프로그램은 프리즈 마스터즈 토크 (Frieze Masters Talk)인데, 올해는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관장인 니콜라스 컬리넌(Nicholas Cullinan)이 감독을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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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the Gap! 런던 지하철의 예술 프로그램내가 본 것들 2023. 10. 1. 05:16
서울에서 지하철을 기다릴 때 스크린 도어에 하얀 글자로 적힌 시를 읽어보곤 했다. 그 때 눈에 들어왔던 몇몇 글귀는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리 속에 남아있으며,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에게 찰나의 예술을 제공해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던 프로젝트이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영국에도 소개할만한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하철을 처음 발명한 국가는 영국이기에 훨씬 더 역사가 깊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트 온 더 언더그라운드 (Art on the Underground)’는 런던교통공사(Transport for London)이 운영하는 대표적인 공공예술 프로그램이다. TFL은 런던 시민의 발 같은 존재인데, 런던 지하철의 운영회사이자,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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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Earth' 예술은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내가 본 것들 2023. 8. 28. 03:51
지금,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친애하는 지구에게: 위기의 시대, 예술과 희망' (Dear Earth: Art and Hope in a Time of Crisis)이라는 환경 주제 전시가 진행중이다. 아티스트 Otobong Nkanga의 '돌봄은 저항의 한 형태' 라는 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진 이 전시는, 전 세계에서 15명의 예술가와 그 작업을 초대하여 생태계와 생태계의 상호의존성, 인간과 자연의 정서적 연결을 탐구한다. 전시를 보다 보면 지난 몇 년간 런던에서 있었던 수 많은 환경 관련 전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서펜타인 갤러리의 Back to Earth (2022), 바비칸 아트센터의 Our Time on Earth (2022), 테이트의 A Clearning in the Fore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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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CA: 런던의 중심에서 공공미술을 외치다내가 본 것들 2023. 7. 29. 18:56
'피카델리 라이트'는 상징적이다. 세계에서 내노라 하는 기업들이 1분 남짓한 광고를 걸기 위해 위해 수 억을 쓴다는 그 곳,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그 곳에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미디어 공공미술 프로젝트 CIRCA가 등장했다. 런던 피카델리 서커스 한 가운데, 커다란 4K LED 빌보드에 LG와 삼성의 광고가 붙어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십 몇여년 전 머나먼 땅에서 온 이방의 학생이었을 때, 길가에 서서 그 광고를 몇 번이고 보며 이유 모를 대리만족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피카델리 라이트(Picadilly Lights)*는 상징적이다. 세계에서 내노라 하는 기업들이 1분 남짓한 광고를 걸기 위해 위해 수 억을 쓴다는 그 곳,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그 곳에 2020년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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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기담작업 2023. 6. 24. 23:13
10년도 넘은 이야기다. 영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귀국한 후, 한참 어떻게 살지 고민하고 있었던 여름 즈음이었던 것 같다. 한예종 근처에 있는 아는 선배 집에서 잠깐 신세를 지고 있을 때였는데, 모 작가 어시스턴트 인터뷰를 보러 성북동에 가게 되었다. 작가 스튜디오는 성북동 대사관 거리 훨씬 뒤의 산 어드메에 위치해 있었는데, 거기서 길을 잃었다. 담장이 아주 높은 건물들 사이로 울창한 나무들이 보이고, 건물들의 비싼 통창에 반사된 햇빛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그 근처 즈음이라고 확신했기에 경사로를 따라 계속 올라갔다. 한참 헤매다가 작은 암자 하나를 발견했다. 들어가는 문이 어딘지도 모르도록 은밀하고 담장이 높게 설계된 그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작은 단층 암자였는데, 암자의 문이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