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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넘은 이야기다. 영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귀국한 후, 한참 어떻게 살지 고민하고 있었던 여름 즈음이었던 것 같다. 한예종 근처에 있는 아는 선배 집에서 잠깐 신세를 지고 있을 때였는데, 모 작가 어시스턴트 인터뷰를 보러 성북동에 가게 되었다.
작가 스튜디오는 성북동 대사관 거리 훨씬 뒤의 산 어드메에 위치해 있었는데, 거기서 길을 잃었다. 담장이 아주 높은 건물들 사이로 울창한 나무들이 보이고, 건물들의 비싼 통창에 반사된 햇빛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그 근처 즈음이라고 확신했기에 경사로를 따라 계속 올라갔다.
한참 헤매다가 작은 암자 하나를 발견했다. 들어가는 문이 어딘지도 모르도록 은밀하고 담장이 높게 설계된 그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작은 단층 암자였는데, 암자의 문이 열려있었다. 길을 물어볼 요량으로 쭈볏쭈볏 안으로 들어갔더니 스님 한 분이 합장하며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어이없는 말을 들은 스님은 길을 알려줄테니 차나 한 잔 하고 가라고 하셨다.
문 안으로 들어가 암자를 돌아 앞쪽으로 가니 암자의 앞 쪽에는 작은 잔디밭이 있었고, 잔디밭 아래쪽은 절벽같이 깎아지른 산이었다. 그때만 해도 미세먼지가 없었는지, 아니면 그냥 운이 좋았는지 그 잔디밭에 서서 보니 서울 풍경이 한 눈에 들여다 보였다.

성북동 암자, 2023 스님은 암자에 혼자 기거한다고 하셨다. 그 때 당시 혼란스러운 내 상황에 대해 이야기 했고, 뭔가 선문답같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그 이야기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암자 끝 마루에 앉아서 마셨던 노란 국화차와, 산 중턱에서 한 눈에 내려다 보이던 서울 풍경이 아직도 기억난다.
작가 스튜디오에서는 같이 일하면 좋을 듯 하니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할지 알려달라고 했지만 거리상의 이유로 결국에는 가지 않았다. 다만 그 때 그 암자에 다시 가기 위해 성북동에 간 적은 있다. 세계 각 국의 대사관들과 이름모를 고관들의 주택을 지나 암자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곳을 다시 짚어 올라갔지만 암자는 거기 없었다. 걸어도 걸어도 암자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고 결국엔 찾지 못했다. 그 때도 핸드폰으로 지도를 볼 수 있었을 테니 찾으려고 마음 먹었다면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냥 내려왔다. 왜냐고 물어보면 할 말은 없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는 게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