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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균열
    런던, 집 2024. 10. 29. 21:46

    슈퍼마켓 하나도 없는 단촐한 섬이라 멍하게 앉아서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멀리 도망쳐왔어도 엉망이 된 집이 계속 생각났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돌아가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지와 같은 현실적인 생각도 있었고,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 중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동지에 얽힌 이야기이다. 전해져오는 이야기로 땅과 하늘에는 엄격한 경계가 있는데, 밤이 제일 길어지는 그 날, 동지에는 그 경계에 균열이 생기고, 그 틈으로 귀신들이 나와 사람들 사는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해가 뜨면 다시 틈 사이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균열은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007년, 도리스 살세도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바닥에 거대한 균열을 만들었다. 지금도 테이트에 가면 콘크리트로 그 균열을 메운 흔적을 볼 수 있다. 내가 겪은 것은 우리집 벽을 가로지르는 실제적 균열이기도 했지만, 이웃 커뮤니티간의 균열이자 문화의 균열이었으며, 이 나라 영국에 존재하는 사회적 균열이기도 했다.

    Doris Salcedo,  Shibboleth , 2007–08, installation at Tate Modern, 2007–08, ©Doris Salcedo

    몇 주간의 도피 끝에 나는 영국으로 돌아왔고, 오랜 고통 끝에 아랫집과 합의를 봤다. 결국에 아랫집 공사는 최근에 마무리되었다. 완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끝이 났다. 살세도가 뒤집어놓은 테이트모던의 바닥처럼, 균열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만들지만 어떻게든 인간의 삶은 봉합이 되고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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