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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도피: 바다를 건너다
    런던, 집 2024. 10. 29. 21:39

    갈등이 극에 달할 무렵, 나는 더 이상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도망쳤다. 런던 근교의 수많은 장소들을 거쳐, 프랑스, 이탈리아, 모로코, 미국, 그리고 결국 한국까지 도망쳐 통영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두 시간, 바다를 건너 총 인구 27명의 작은 섬까지 흘러들어갔다. 도망자에게도 스타일은 있었다. 뻥 뚫린 하늘길보다는 바다를 가로질러 가고 싶었다. 나는 유년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고, 우리 친가는 한국 남단에 있는 섬 거제도 출신이다. 이런 나의 뿌리와 더불어 지금은 섬나라에서 살고 있어서일까, 바다를 건너 숨고 싶었다. 하늘처럼 뻥 뚫려있지 않기에 바다는 섬과 대륙을 분리시키고 경계를 설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대륙과 대륙 사이의 연결 통로로 작용한다.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의 사진 연작 ‘대양(Ocean)’처럼, 경계, 국경, 그리고 연결 통로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업체와의 고성과 싸움, 내 발 바로 밑에서 진행되는 공사에 질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적막한 곳을 찾아 북해와 남해 바다를 건너 섬까지 흘러들어갔다.

    Andreas Gursky, Ocean 1, Chromogenic print, Edition of 6, 249.4x347.4x6.4cm, 2010, © Gagosian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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