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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경계 분쟁: 영국판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런던, 집 2024. 10. 29. 21:37

    아랫집은 건축에 문외한이었고, 찾을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업체를 찾아 일을 맡겼다. 그리고 공사 기간 중 인부들을 감독하는 대신 집을 떠나 있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아랫집이 선정한 업체는 심각한 수준 미달이었고, 공사가 잘 못 되면서 이 상황을 관리해야 할 구청의 관할 부서나 감리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아랫집이 집 뒷면을 박살낸 후, 나는 구청에 수십 통의 전화를 걸고 수없이 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영국의 관리 주체들은 매우 느렸고, 이 사태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1970년대, 당시 수상 마거릿 대처가 영국 경제구조에 칼을 빼들면서 건물 감리 시스템(을 비롯한 많은 분야)을 민영화한 이후, 돈을 주고 민간 감리 업체를 고용하는 것은 영국에서 흔한 일이 되었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감리 민영화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가 곧 드러났다. 민영 감리 업체가 검사를 철저히 하면 고용주는 적당히 눈을 감아 줄 다른 감리 업체를 고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민간 감리 업체는 검수를 엄격하게 하지 않는다. 우리 집 사건의 경우, 구청과 민간 감리 업체 모두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었고 이 쪽 저 쪽으로 책임을 떠넘기며 사태는 윗집과 아랫집 간의 힘 싸움으로 변질되었다. 한 집안에서 머리가 꼬리를 잡아먹는, 그리스 신화 속의 뱀 오로보로스 같은 형상이었다. 그러면서 이웃 간 갈등은 극에 달했다.

    A capture from Chanel 4 documentary ‘Inside Grenfell’, 2021

    민영화의 부작용과 관료주의의 상징과도 같았던 런던의 비극적인 그렌펠타워(Grenfell Tower) 화재 사건(2017)이후, 감리 시스템에 많은 개선이 있었다고 떠들어댔지만, 우리 집의 문제는 그렌펠 5년 후인 2022년에 시작되었으니 본질적인 문제의 개선 여부에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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