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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Oroborous: 꼬리를 잡아먹는 머리
    런던, 집 2025. 5. 15. 00:12

    Oroborous, drawing on paper, 2024

     

    아랫집과의 많은 갈등을 겪으며, 나는 ‘하나였던 것이 둘로 나뉘는 과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떻게 하나였던 집이 둘로 나뉘는지, 나뉜 후에는 무엇이 달라지는지, 그 경계는 어디에 어떻게 설정되는지—이런 질문들은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

     

    한 번은 데미 무어가 주연한 Substance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은 젊어지고 싶다는 욕망으로 자신을 둘로 나누는 약물을 투여받는다. 분리의 과정은 극도로 폭력적이고, 쪼개진 두 인격은 결국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 채 함께 파멸한다. 나뉘었지만 분리되지 못한 존재들. 그 이야기가 내 안에 오래 남았다.

     

    이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무렵, 이곳은 겉보기에는—혹은 법적으로는—두 채로 분리된 집이었다. 하지만 건축적인 관점으로 보면, 거의 하나의 집이었다. 런던에 와서 나는 이런 구조를 처음 보았다. 하나의 빅토리안 하우스를 반으로 나눠 두 개의 독립된 거주 공간으로 만드는 방식. 런던처럼 집값이 비싼 도시에서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하나의 집을 둘로 나누는 데에는 많은 공정이 필요하다. 벽을 세워 물리적 경계를 만들고, 각각의 출입구를 확보해야 하며, 방음과 전기 배선, 방화 구조, 배관 시스템까지 완전히 분리해야 비로소 ‘두 개의 독립된 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공사들이 겹겹이 얹힌다. 하지만 이 집이 두 채로 나뉜 건 1980년대의 일이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엄격한 건축 규제가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 두 집은 여전히 하나의 집으로 보는 것이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겉으로는 나뉘어 있지만, 이 집은 여전히 하나의 몸체를 공유하고 있다. 나는 종종 그 경계 위에 나 자신을 위치시킨다. 어디까지가 나의 공간이고, 어디부터가 그들의 영역인지 명확하지 않은 채로, 나는 그 틈에서 살아간다. 물리적으로는 나뉘었지만, 소리와 진동, 온기와 불편함은 여전히 경계를 넘나든다.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은 과거의 구조일까, 아니면 불완전한 분리의 후유증일까. 나뉘었지만 엉켜 있는 이 구조 속에서 나는 매일같이 경계의 모순과 폭력성을 체감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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