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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밖으로, 밖으로내가 본 것들 2024. 6. 29. 08:00
아트엔젤(Artangel)은 '뛰어난 예술, 예상하지 못한 장소 (Extraordinary Art, Unexpected Places)' 라는 모토 아래 현대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는 영국의 선구적인 미술 기관으로, 전통적인 갤러리와는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해 공공장소와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예술 작품을 선보인다. 영국 및 해외 도시의 다양한 공공 공간을 예술 작품의 무대로 활용하여 공원, 거리, 버려진 건물, 지하철역, 역사적인 건축물 등으로, 각각의 공간이 작품에 새로운 맥락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일상과 분리된 고급 문화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경험으로의 예술을 강조하는 아트엔젤은, 1985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장장 40년간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설립 이후, 인스티튜트 오브 컨템포러리 아트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의 큐레이터 제임스 링우드(James Lingwood)와 공연예술계 종사자인 마이클 모리스(Michael Morris)가 공동 디렉터로 활동했던 1991년부터 이들은 두드러지는 활동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가장 유명한 작품을 꼽자면 영국의 조각가 레이첼 화이트레드(Rachel Whitered)의 '하우스(House)' 일것이다. 1993년, 런던의 낙후 지역 이스트엔드의 빈집을 콘크리트로 주조하여 조각 작품으로 변형시킨 이 작품은 도시 재개발과 주거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불러일으켰으며, 공공 공간에서 예술이 어떻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충격을 넘어서, 주거 공간의 의미와 도시 재개발의 사회적 영향을 고찰하게 했다. '하우스'는 예술과 건축, 그리고 사회적 논의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아트엔젤의 철학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House (1993) by Rachel Whiteread, © Simon Edney 런던 남부 엘리펀트&캐슬(Elephant and Castle) 지역의 비어있던 공공주택 내부에 황산구리를 뒤엎어 이 화학물이 실내의 벽, 천장, 바닥, 욕실등 표면을 짙은 파란 결정체로 덮는 과정을 보여주는 아름답고도 독특한 프로젝트였던 로저 히온스(Roger Hiorns)의 2008년 작품 '압류(Seizure)' 또한 아트엔젤의 프로젝트이다.

Roger Hiorns, Seizure, 2008/2013. All images ©artist and Arts Council Collection, Southbank Centre London. Photographs: Marcus Leith 조금 더 최근의 협력 작업 중 눈에 띄었던 것은 환경의 물질성과 역사를 탐구하는 짐바브웨 출신 영국 작가인 레이첼 핌 (Rachel Pimm)의 "Afterness(2021)" 전시, "an earshare / to cassay the earthcrust" (청각 경험/지각 조사) 프로젝트이다. 오퍼드 네스라는 지역의 지질학적 역사와 이곳에 위치했던 군사시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자연이 군사시설을 지워버리는지에 대한 질문을 바탕으로 제작된 사운드/비디오 작품이며, 지질학적 물질을 정치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작가들에게 행정상, 예산상, 공간상의 문제로 외부의 도움 없이는 이뤄지기 어려운 공공미술 작업을 시도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트엔젤이다.

Image capture from 'an earshare / to cassay the earthcrust' 아트엔젤은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자유와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비전이 실현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는 단순한 후원이 아니라, 예술가들과의 깊은 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일반 지원 단체와 다르다. 예술가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하고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아트엔젤은 끊임없이 신선하고 도전적인 작품들을 탄생시킨다. 이러한 노력은 예술이 단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임을 상기시켜준다.
참조:
an earshare / to cassay the earthcrust | Artangel
PIMM & CUNNINGTON, suspending geology in its mutations (clotm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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