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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차역과 공공미술: 세인트 펜크라스 역, '와이어'
    내가 본 것들 2024. 3. 29. 15:30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런던의 세인트 팬크라스 역은 카메라 렌즈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규모이며 우아한 고딕 양식에 다양한 석재를 사용하여 화려하게 꾸며진 역이다. 런던에 수 많은 기차역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세인트 펜크라스는 상징적이다. 매 주, 이 역에서 유로스타를 이용하는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해저터널을 통과해 유럽 대륙과 영국을 드나든다. 이 역을 가면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아마도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에 대한 감상적인 기대 때문일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이 비단 나 뿐만은 아니었던 것인지, 이 역에는 영국에서 가장 야심찬 공공미술 프로그램 중 하나가 운영중이다. 여행에 로맨스를 불어넣고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마법같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속철도회사 HS1과 함께 시작된, 와이어(Wires)라는 것이 세인트 팬크라스 역에 존재한다. 

     

    언제 이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이야기하기는 약간 어려운 감이 있다. 2007년부터 작은 단발성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으나 지금처럼 대형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 기차 종착점 바로 뒤 그랜드 테라스 앞에 2013년, 루시 오르타(Lucy Orta)의 '구름: 유성(Cloud: Meteorous)' 을 시작으로, 데이비드 배츨러(David Bachelor)의 '크로몰로코모션(Chromolocomotion)', 코넬리아 파커의(Conelia Parker) '원 모어 타임(One More Time)', 론 아라드(Ron Arad)의 '생각의 열차(Thought of Train of Thought)'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공공미술 작품들을 선보였다. 에드문드 드 월(Edmund De Waal), 에반 데이비스(Evan Davis), 나이젤 캐링턴(Nigel Carrington), 크리스 웨인라이트(Chris Wainright), 리처드 쿡(Richard Cook)등을 포함한 자문 위원회에 의해 운영되며*, 다뤄졌던 주제들은 주로 여행, 움직임, 팬크라스 역의 공간과 역사에 관련되어 있다. 

    Ron Arad, Thought of Train of Thought, 2016 Copyright_HS1

     

    그 중에서도 2018년 4월에 트레이시 에민이 선보인 ' I Want My Time With You'는 전체 역을 분홍빛으로 고고하게 물들이며 굉장히 강한 인상을 남긴 작업이었다. 작가가 휘갈겨 쓴  20미터짜리 거대 LED 'I Want My Time With You'는 색깔과 감성적인 필체 때문에 러브레터같이 보이지만, 사실 연인이 아닌 유럽에게 보내는 메세지이다. 그 당시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던 브렉시트와 EU를 떠나기로 한 영국의 결정에 대한 에민의 감상을 담은 이 간결한 문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유럽과 영국을 연결하는 단 하나의 기차역에 설치되어 이용객들을 맞이했다. 트레이시 에민은 2019년에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길 원해요(I Want My time With you)>는 사실 유럽을 향한 것입니다, 우리가 곧 북해에 떠있는 작은 섬이 될 것이라는 것이 가슴이 아픕니다. 이것은 모든 유럽인에게 전하는 내 메세지입니다."

    Tracey Emin, I Want My Time With You, 2018, Copyright_HS1

     

    2022년, 와이어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세자드 다우드(Shezad Dawood)의 현장 반응형 설치 " "HMS 앨리스 리들"을 새로 공개했다. 이 작품은 세인트 팬크라스역의 건축적 요소와 작가의 오랜 관심사인 SF 소설, 문학적 주제를 반영했으며, 방문객들이 스마트폰으로 QR 코드를 스캔하여 증강 현실 필터를 입혀 감상이 가능하다. 제목인 앨리스리들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따왔으며 (팬크라스 역 바로 옆에 위치해있는 영국도서관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본 원고 소장처이다), 물리적 조각 뿐 아니라 디지털 공간으로 작업을 확장하여 팬크라스 역을 다른 공간으로 점프할 수 있는 포털처럼 표현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시대의 여행자들이 앨리스처럼 과거, 미래로 여정을 떠나게 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Shezad Dawood, HMS Alice Liddell, 2022, Copyright_HS1

     

    떠남과 만남을 전제로 하는 공간은 슬프면서도 설레인다. 기차역에서 손 흔들며 헤어진 가족이 기억나기도 하고, 기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데 대한 설레임이 생각나기도 한다. 기차역, 혹은 선착장이나 공항을 생각하면 누구나 그런 개인적 추억 하나쯤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특정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들은 귀하다. 이런 소중한 감정을 공공미술로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킨 와이어 프로젝트는 세인트 팬크라스 역에서 만나볼 수 있다. 또한 1급 보존 건물인 팬크라스 역 자체 또한 굉장히 아름다우니 언젠가 이 곳에 올 일이 있다면 시간을 들여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참고 웹사이트

    Shezad Dawood unveils physical/digital art installation at St Pancras International. - FAD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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