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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옐로우: YELLOW
    카테고리 없음 2025. 2. 26. 05:00

     

     

    옐로우의 이야기 – 사라진 사람들

    옐로우는 오래 전 내 직장 건물 앞에서 노숙 생활을 하던 미국 여성이다.

    건물의 서쪽 통창 바로 바깥에는 계단처럼 약간 올라가는 삼각형 모양의 평평한 공간이 있었는데, yellow의 집, 텐트는 이 삼각형 공간 위,  건물의 안과 밖을 가르는 투명한 유리통창 바로 바깥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기묘한 동거는 내가 입사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녀를 그 곳에서 내보내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엄밀히 말해 그녀가 점유한 곳은 '건물의 '바깥'이었기에 결국엔 회사도 간섭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건물의 일부처럼 그곳에 자리잡았고, 나는 그저 무심히 매일 그녀의 텐트를 지나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인사를 하고, 가끔 지나치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돌아갈 수 없는 사람

    그녀의 이야기는 두서가 없었고, 가끔은 알아듣기 힘들었다. 어찌저찌 알아낸 바에 따르면,  옐로우는 원래 미국인이었지만, 오래전 전남편을 따라 영국으로 건너왔다고 했다. 그러나 전남편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었던 듯 하다. 영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마약 중독자가 되었고, 한번 그녀에게 손을 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심심하면 그녀에게 손찌검을 했다고 한다. 결국 옐로우는 폭력과 학대를 피해 도망쳐 나왔지만, 거리에서 사는 지금의 상황을 봤을 때, 그 후의 생활이 그렇게 녹녹하지 않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묻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왜 아니겠어? 전남편이 여권을 태워버려서 돌아갈 수도 없어."

     

     

    경계의 삶 –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홈리스의 삶은 법과 제도의 경계를 벗어난 삶이다. 특히,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거리에서 여성 홈리스의 삶은 더욱 가혹하리라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마이클의 텐트가 항상 옐로우의 텐트 가까이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둘이 연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이클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냐, 우린 그냥 친구야. 나는 옐로우를 미국으로 돌려보내고 싶어."

     

    마이클은 다른 홈리스들과 함께 공공근로를 하며 옐로우의 비행기 값과 여권 비용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옐로우가 떠나고 나면, 자신도 더 이상 런던에 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어느 바닷가 마을 출신이라고 했던가, 언젠가 한적한 바닷가 마을로 가 텐트 하나를 치고 사는 것이 꿈이라고 했던가. 솔직히 그들의 말을 전부 믿지는 않았다. 집에 가고 싶어하는 동료를 위해 미국행 비행기 값과 여권 비용을 모으는 홈리스들이라니, 동화에 나올 이야기 아닌가. 1년쯤 지나, 미국 대사관이 옐로우의 사정을 듣고는 여권을 무료로 재발급해 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마이클에게서 들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그 너머로 떠난 사람들

     

    그러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어느 날, 물을 마시며 통창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둘의 텐트가 사라졌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 전에도 텐트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적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돌아올 거라고 내심 기대했다. 한동안은 그 창 옆을 지나갈 때 마다 텐트가 있던 곳 주변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었다. 하지만 결국, 한참이 지나 내가 회사를 그만둘 때 까지도 그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정말 옐로우는 여권을 되찾아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돌아갔을까. 그렇다면 마이클도, 끝내 런던을 떠나 한적한 바닷가에서 텐트를 치고 살고 있을까. 아니면, 전래동화에서 흔히 말하듯 그냥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걸까.

    바다 건너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었던 옐로우, 바닷가에 텐트 하나를 치고 혼자 살아가길 꿈꾸던 마이클,  건물의 바로 바깥, 약 20 제곱미터의 안도 아니고 완전한 바깥도 아닌 이상한 공간, 그 경계에 같혀 살아가던 둘은 어느 순간 그 경계를 넘어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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